키치

본인방,세고에,조훈현(쿤켄),이창호...그리고

검이불루 2014. 11. 20. 08:53
반응형


요즘 바둑용어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돌)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인기인가 봅니다. 근대바둑의 역사는 일본의 혼인보(본인방)에서 시작됐다고 보면 그다지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이 본인방(혼인보)과 한국 바둑과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400여 년 전 시작된 본인방(혼인보)은 도책(도사쿠), 수책(슈사쿠), 수영(슈에이이)등의 특별한 전설을 남긴 천재들을 배출하며 중흥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바야흐로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혼란기가 다가오며, 천하제패를 꿈꾸던 조선의 김옥균은 삼일천하를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망명을 가게 됩니다.


김옥균은 그곳에서 그 당시의 본인방 슈에이(수영)와 바둑을 두며 울분을 삼키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슈에이와 김옥균의 교류는 김옥균이 죽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상해로 추방된 김옥균이 자객 홍종호에게 죽은 뒤, 김옥균의 후원자들은 그의 유복과 의발을 조금 가져와 아오아먀 외국인 공원묘지에 김옥균의 묘를 조성하게 됩니다. 일종의 가묘인 셈이지요. 10년 뒤 1904년 슈에이의 친구이자 훗날 일본의 총리까지 지내게 된 이누카이 쓰요시의 지원으로 묘비는 좀 더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정치가와 바둑의 전통은 나중 일본의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과 조훈현의 사적인 바둑으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넉 점 치수로 오자와가 이겼다고 알려졌습니다. 대단한 실력이군요.)


중국의 손문(쑨원)을 도와 그의 재기를 지원했고,  장개석과도 오랜 지기였던 이누카이는 그러한 친교를 바탕으로 1931년 일본의 총리로 취임하게 됩니다.


총리로 취임한 그에게 오랜 친분을 유지하던 세고에 겐사쿠(조훈현, 오청원, 하시모토 우타로를 키워낸 일본바둑계의 전설)가 부탁을 하게 됩니다. 중국의 오청원이라는 청년을 제자로 맞이하고 싶다고 후원을 해달라는 것이지요.


잠시, 혼인보(본인방)의 계보를 이야기 하자면, 혼인방(본인방)은 세습제입니다, 즉 중국의 문파와 비슷한 개념이지요. 이러한 마지막 세습 본인방인 슈사이와 세고에의 대국이 유명합니다. 그리고 세고에는 전쟁의 와중에 히로시마에서 본인방(혼인보)전을 참관하게 됩니다. 대국 와중에 원폭이 터져버렸습니다. 이 대국에서 세고에는 자식과 조카를 잃고 본인도 실명 위기에 처할 뻔했습니다. 


피폭된 자식을 못 알아보고 목소리로 아들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세습제 혼인보(본인방) 슈사이 이후로 본인방(혼인보)의 계보는 끊어지게 됩니다. 그 적통은 고스란히 세고에 에게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조훈현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세고에는 실질적으로 일본 현대바둑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본인방(혼인보)의  적통을 고스란히 가져간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위치이지요.


그리하여, 세고에는 오청원을 받아들이게 되고, 훗날 오청원은 세계 바둑 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이러한 세고에가 말년에 받아들인 제자가 천재 조훈현입니다. 쿤켄이라는 애칭까지 지어주며 말년의 세고에는 조훈현에게 집착을 하게되죠.


군 문제로 조훈현이 한국으로 떠난 후, 세고에는 자살로써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아마도 조훈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은 또 한가지의 원인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절친한 친구인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죽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조훈현은 나중에 세계최초의 세계 바둑 기전이라 일컬어 지는 응창배(응씨배)에서 우승함으로 인하여, 돌아가신 스승에 대한 조금이나마 보은을 하게 됩니다.


세고에가 이렇듯 한.중.일 삼국의 걸출한 바둑 인재를 배출한 것은 승려 출신이 많았던 역대 본인방들의 음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듯 도도히 흘러가던 본인방의 기세는 세고에를 거쳐서 조훈현을 거쳐 그의 내제자였던 이창호에게 흐르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요즘 중국에 약간 밀리고 있는 형세이긴 하지만, 아직 이창호의 뒤를 이을만한 기재는 보이지 않고 있죠. 물론, 한, 중, 일 모두 따져도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청원은 인터뷰에서 지금은 한국의 경제적 기세가 좋기에 한국에서 천재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인터뷰 당시는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등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였죠), 앞으로 중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면 중국에서 많은 좋은 기사들이 탄생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많은 좋은 기사들이 탄생했으니, 반은 들어맞았고,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천재는 출현하지 않았으니, 반은 틀렸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이창호가 어느덧 불혹에 가까워진 나이입니다. 이창호가 내제자를 들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도 들이지 않는다면, 본인방의 도도한 역사적 흐름은 이창호에게서 막을 내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도도한 바둑의 흐름이 다시 언제쯤 일본으로 돌아가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바둑역사에 보면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뱀 발, 조훈현의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고에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실패하게 되자, 그는 조훈현이 귀국한 지 4개월 만에 자살로써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두통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졌습니다. 한 통은 가족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통은 일본기원 관계자들에게 반드시 조훈현을 일본으로 데려와서 바둑을 두게 하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노 스승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조훈현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일본바둑의 모든 기운은 한국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전 개인적으로 직감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얼마 전, 세고에의 제자이자 조훈현의 사형인, 세계바둑의 큰 별 오청원(우칭위안)이 타계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짧은 글입니다.


http://wooraky.tistory.com/entry/오청원-우칭위안의-별세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