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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4

김옥균과 혼인보(본인방)의 인연..그리고 조훈현..이창호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유신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기린아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한 후, 메이지유신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게된걷게 된 바둑계의 거장 혼인보 슈에이와 절친한 친구사이가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1884년 인천에서 배를타고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난 뒤 절해고도 오가사와라 제도로 유배된 때가 1886년이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본 바둑계의 최대 문파 혼인보의 수장 슈에이는 이미 김옥균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본토에서 1,000킬로 미터나 떨어진 유배지에서 3개월을 지내며 김옥균과 바둑을 두었던 점이나 김옥균이 홋카이도로 옮겨질 때, 아쉬움에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따라서 홋카이도까지 간 일 등을 생각하..

Gossip 2015.01.17

21세기 바둑사에 길이남을 이창호

바둑의 신이 존재하다면, 과연 누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까? 아마도 이창호가 가장 근접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조훈현의 천재성도 조치훈의 치열함도 좋지만, 평범한 이창호의 모습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창호를 보고 있으면 신의 한 수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 중, 일 삼국에 모두 잘 알려진 현존하는 인물치고, 안티가 없는 사람을 꼽자면, 아마도 이창호가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으며, 경제적 위상의 부상과 함께 중화사상의 기치를 드높이고 있는 중국에서조차 이창호라는 존재는 거의 신격화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이창호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요? 여러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전성기 시절 이창호의 바둑 실력이 가장 첫 이..

Gossip 2014.12.08

오청원, 우칭위안의 별세

조훈현의 사형이자, 이창호에게 사숙과 같은 존재인 우칭위안(오청원)이 11월 30일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혼란의 시기에 태어나 질곡많은 한평생을 살아간 거장의 영전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이로써, 세고에 문하의 유일한 생존자는 조훈현 구단만 남게 되었습니다. 한,중,일 삼국의 바둑계를 평정했던 별들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바둑에 대한 향수도 점점 사그라드는 듯한 느낌 입니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인으로 삶을 마감한 우칭위안, 중국의 바둑기세를 예언하며 중국세의 우위를 점쳤던 선각자이자, 현대바둑의 다양한 기틀을 만든 장본인 이기도 합니다. 제자로는 임해봉(린하이펑)과 여류기사로 유명한 루이나웨이 등이 있습니다. 한때 이창호가 루이나웨이에께 바둑으로 쩔쩔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같..

Gossip 2014.12.02

조훈현과 후지사와, 그리고 낭만바둑의 시대

일년에 4번만 이기면 족하다는 말을 남긴 세계 바둑계의 기인이자 자유인 이었던, 조훈현의 또다른 스승 후지사와 슈코, 조훈현의 날제비라는 별명은 후지사와 슈코를 따라다니며 두웠던 수많은 속기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조훈현은 언제나 세고에 겐사쿠에게는 바둑의 도와 바둑을 대하는 자세, 마음가짐을 후지사와 슈코 에게는 실전틍 통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이 조훈현의 바둑을 단련시켰던 후지사와 슈코(본명은 후지사와 히데유키)는 일본 바둑계, 아니 전 세계 바둑계를 통털어서도 기인으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의례 바둑기사들이 추구하는 도, 예의범절 따위는 개나 줘버린듯 기행을 일삼았던 기사이다.세고에 문하로 들어가 외로운 나날을 지내던 조훈현을 데리고 다니면서 속기바둑으로 조훈현을 단련시켰던 스승이자..

Gossip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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