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어렵고 암울했던 한국 경제 상황 속에서 IT 분야도 예외일 순 없었습니다. 백수가 되거나 길거리로 내몰린 젊은 직장인들이나 중년의 가장들은 기원을 찾거나 탑골공원에 죽을 치는 등, 나이대에 걸맞은 소일거리를 찾아가며 힘든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중 젊은이들은 점점 전국적인 유행을 선도하던 피시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그 우울함을 잠시나마 잊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8년 터진, 이른바 O양(오현경) 비디오 유출 사건은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일으키며 용팔이(용산컴퓨터 업자를 비하하는 속어)들에게 때아닌 호황을 불러왔습니다.
이 비디오를 보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아재가 자식들을 위함이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너도나도 CD 재생기가 탑재된 최신형 컴퓨터로 교체하거나 용산에 들러 구매하며 슬쩍 O양 비디오를 얻어가곤 했습니다.
어떠한 기술이 전국적인 보급은 의외의 분야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성적인 것과 결합하면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그 유명한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VHS와 베타의 비디오테이프 형식에서 VHS가 장악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포르노 업자들과의 결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요즘 미드저니를 비롯한 스테이블 디퓨전 등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 시스템들이 우후죽순처럼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주는 수준을 넘어서 이제 텍스트를 영상으로 바꿔주는 활발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즘도 어둠의 경로에 들어가면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과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유명인 XX 영상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위 영상들이 O양 비디오처럼 유행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은 만들기에 진입장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범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돈이 될 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면, 비디오 생성형 AI와 딥페이크 기술은 어마어마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일론 머스크의 얼굴과 목소리를 이용하여 특정 세력이 주가조작을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정치적인 목적을 위하여 유명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이용한 범죄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체포 사진과 교황의 패딩 짤 등은 매우 유명하지요….
지금도, 사진 한 장과 조금의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위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이 보편화된 시대가 온다면, 이제 자기 경험이나 체험도 믿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점점 불신은 확산할 것이며, 그 누구의 말이나 행동, 혹은 영상도 믿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할 듯합니다.
역으로 이러한 기술을 악용하는 세력들도 존재하겠지요. 버젓이 CCTV에 영상증거가 남아도 "저건 누군가가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AI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거짓 증거입니다." 하면서 어그로 끌겠지요.
사랑하는 자식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영상통화를 걸어와서 급히 돈을 보내달라고 하면, 안 보낼 한국의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이제 우린 뭘 믿으며 살아가야 할까요? 불신의 시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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