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남아있는 우키시마호. 이 배에 타고 있던 무고한 조선인 수천 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1945년 8월 22일 밤 10시께 4천7백30t짜리 화물선 1척이 아오모리 현 최북단인 시모키타 반도의 오미나토 항을 출발해 쓰가루 해협으로 향했다.
이 배에는 일본의 패망과 함께 징용으로 끌려갔거나 여러가지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일본에 있었던 조선인 수천 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환경 속에서도 귀국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앉고 있었다. 그러나 배는 출발한지출발한 지 이틀만인 8월 24일 갑자기 원인 모를 폭발과 함께 대부분의 생명이대부분 생명이 칠흙 같은 어둠 속에 수장되고 만다.
수장된 이들의 대부분은 제1호 귀국선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갈 부푼 꿈을 앉고 있던 조선인이었다.
5백여 명의 생존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정부는 미군이 매설한 폭뢰에 의한 사고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증언자들의 말에 따르면, 사고가 있기 전, 일본인 승무원들이 보트를 이용해 배를 탈출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우키시마호가 가라앉은 지 4개월이 지난 45년 12월 한국인 생존자 몇몇이 우키시마호 사건을 ‘일본군에 의한 계획적인 폭거’라고 주장하며 일본 정부를 진주군(미군) 사령관에게 고발한 문서까지 발견되었다.
더군다나 일본은 54년 갑자기 이 배를 인양하여 조사도 없이 해체하여 고철로 매각해버림으로 인하여 이 사건은 영원한 미제사건으로처리 안 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세계 해양 조난사에 남을 이 우키시마 침몰사건은 이렇게 일제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어 왔다은폐됐다.
더 늦기 전에 생존자들의 증언을 녹취하고 남은 문서들을 수집하여, 일부나마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는 타이타닉과 같은 세계해난사의 재난영화로 만들어봄 직하다 생각한다.
타이타닉은 알아도 우키시마는 모르는 현실 속에서 이 치욕스러운 역사를 영화로 남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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