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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달라진 신념...나는 데이터를 생산한다. 고로 존재한다.

검이불루 2024. 2. 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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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20년 넘게 밥을 빌어먹고 살고 있는 처지에서, 나름 최신의 기술 동향과 사회변화에 대하여 잘 적응하며 빠르다고 자부하던 저에게 가장 커다란 충격을 준 분야는 바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입니다.

 

물론 바둑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애착이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대결을 매스컴에서 접하고, 나름 내린 결론은 체스나 장기라면 모를까 바둑은 아직 한세대(30년)는 더 지나야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이 가능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름의 이론적 근거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바둑의 수를 아무리 인공지능이라지만 주어진 계산에만 능통한 컴퓨터가 따라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종교에 가까운 신념 비슷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즉, 컴퓨터는 어디까지나 툴일 뿐, 그 툴은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컴퓨터가 없었다면 도저히 일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못 했을 짓거리를, 컴퓨터를 통해서 하면서도 그저 컴퓨터를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도구가 없었으면 제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은 나올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러한 나의 맹신에 가까운 신념은 무참히 깨졌고, 그 당시(2016년) 40을 지나 중반에 접어들었던 저는 또 한 번의 커다란 충격과 함께 많은 신념을 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소프트웨어가 툴이나 보조적인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의 변화가 가장 큰 변화입니다. 마치 사회시스템이나 국가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도구나 방법에서 그 인간이 그 사회시스템이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처럼 변질(발전?)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다 안정적인 주거를 위하여 내 집 마련을 꿈꾸지만, 그게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인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주저없이 패자라는 낙인을 찍고 있습니다.

 

한평생 연구에 매진하며 업적을 남기 학자나, 돈이 되지 않는 분야에서 지구를 위한 무언가의 흔적을 남긴 사람들보다 강남 한복판 허공에 떠 있는 30평 남짓한 공간을 소유한 사람을 우리는 성공한 사람이라 인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이제 툴에 지나지 않았던 컴퓨터나 그 컴퓨터가 만들어낸 소프트웨어의 도구로써의 삶이 펼쳐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로 비춰볼 때, 인간의 모든 판단을 대체할 수 있는 초거대인공지능의 시대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초거대 인공지능 시대에서 사회적 합의나 논쟁 등의 과정은 국가 간 혹은 일류기업 간 경쟁에서 뒤처짐을 의미하며, 뒤처짐은 곧 낙오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는 점점 더 인간은 파악할 수 없는 초거대인공지능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갈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시작은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처음 받았던 충격은 한계효용의 법칙에 의하여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조금씩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는 늘어난 수명, 대체할 수 있는 건강한 장기, 오감의 조작을 통한 쾌락 등 다양해질 것이고 정교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반대급부의 댓가가 크면 클수록 인간은 기계의 판단에 따르는 거부감이 사라질 것으로 판단합니다.

 

근대철학과 인문학을 탄생시킨,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는, '나는 데이터를 생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뀔 것 같다고 판단한다면, 너무 비약적일까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사회현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통찰할 능력이 제겐 없습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경험이나 습득한 지식에 빗대어 흐릿하게나마 추론할 뿐입니다. 인간은 생각이 길어지면 그 결론은 대부분 부정적이지요. 자꾸자꾸 경우를 따져보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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