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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명대국, 신의 한수 - 이적국(이적지수)

검이불루 2014. 12. 14.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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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쿠 초상화그림으로 전해지는 슈사쿠의 초상화

<슈사쿠(수책)의 초상화>


흔히 호사가들은 바둑의 역사에 있어서 3대 천재를 일컫어일컬어 도책(도사쿠), 수책(슈사쿠), 우칭위엔(오청원)이라 말하곤 한다.


오늘은 그중에 천재중의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고, 히카루의 바둑에서 바둑신이라바둑 신이라 일컫어지는일컬어 지는 후지와라노 사이가 잠시 몸을 의탁했던 설정으로 나오는 슈사쿠-수책(이 만화에서는 이 주인공이 피를 토하고 죽은 토혈국을 만들었다고 설정하였다.)이 만들어낸 이적지수(耳赤之手 - 귀가 빨개지도록 만든 한 수)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적지수 혹은 이적국으로 불리우는불리는 이 바둑은 바둑 역사상 3대 천재라 일컫어지는일컬어 지는 14세(대) 본인방(혼인보) 슈사쿠의 젊은 시절 바둑에 유래를 두고있다두고 있다.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하던 슈사쿠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입단을 하고 15세에 4단을 따기에 이른다. 당시의 본인방 죠와는 슈사쿠를 두고 도사쿠 이후의 최고의 기재라 극찬을 하게 된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이노우에가의이노우에 가의 최고 실력자이던 겐낭 인세키와 바둑을 두게 된 슈사쿠는 2점 치수로 겐낭 인세키와 바둑을 두게 된다. 백여 수가 조금 넘게 진행되자 겐낭은 대국을 물리며, 이번엔 치수를 선으로 다시 한 번 두자고 제안한다. 이 대목은 세고에가 조훈현을 처음 만날 당시와 묘하게 닮아있다.


그 당시 8단이 4단과 더군다나 치수를 물리면서까지 둔다는 것은 거의 파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첫날은 89수까지 둘째 날은 141수까지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흑을 잡은 슈사쿠가 3집으로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이 3일간의 대국이 그 유명한 이적국이다.


이적국이란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만약의 불상사를 대비하여 대기하고 있던 의사가 127수에 놓여진놓인 슈사쿠의 수를 본, 겐낭 인세키의 얼굴을 보고 바둑은 잘 모르지만 슈사쿠가 이길 것 같다고 이야기한 데서 비롯된다.


이 의사는 바둑은 모르지만 127번째 수를 본 겐낭 인세키의 귀가 빨개지는 것을 보고, 슈사쿠가 이길 것이라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정말 다음날 슈사쿠가 의사의 예언대로 바둑을 이김으로 인하여 이 이적국은 탄생하게 되었다.

이적국 기보기록으로 전해지는 이적국의 기보를 토대로 만든 이적국의 모습


이 이후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묘수를  일컫어일컬어 이적지수라 부르게 되었다.


내리 세 판을 이긴 슈사쿠는 훗날 본인방의 수장이 되어 수많은 전설을 남기게 된다. 그중 가장 유명한 전설은 흑번필승으로서 흑을 쥔 바둑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알려졌다.


이러한 슈사쿠는 젊은 나이인 34살에 병을 얻어(콜레라라고 알려져 있다알려졌다.) 요절하고 만다. 그 이후로 일본은 그 유명한 메이지유신에 휩쓸리며 바둑에 대한 관심도 차츰 사그러들게사그라지게 된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수책(슈사쿠)이지만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바둑의 최전성기를 보면서 죽을 수 있어서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슈사쿠 이후 본인방(혼인보)을 비롯한 바둑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앞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도 일본바둑의 최고의 정점과 함께한 마지막 인물로 슈사쿠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가끔 이러한 바둑의 역사와 기록을 갖고있는가진 일본이 부럽기도 하지만, 훗날 바둑 사가들에 의하여 다시 써질 역사에는 조훈현을 비롯하여 이창호, 이세돌 등 많은 천재 기사들의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될회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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